오늘은 오랜만에 퍼플 언니를 만났다!
언니 생일선물을 주기 위해 만난 거였는데 택배 배송 지연으로 선물 전달은 실패했다.
집회 금지 때문에 광화문 일대에 경찰이 엄청 많았다. 괜스레 주눅 드는 느낌이었다.
죄지은 게 없는데 죄지은 느낌적인 느낌...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하러 간 식당은 '한옥, 달'이라는 퓨전 레스토랑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언니랑 둘 다 감탄했다.
푸른 하늘이라는 치트키를 쓰긴 했지만 한옥과 소나무의 조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음식을 주문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구경했다.
생각보다 넓고, 구역마다 인테리어 풍이 묘하게 달라서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 곳도 예뻤지만 벌레가 꼬일까 걱정이 되어 내부에 앉았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뚝배기 고추장 파스타와 마르게리따 피자였다.
뚝배기 고추장 파스타는 고추장 맛은 거의 안 났고, 토마토 스튜 같은 느낌도 나서 매우 맛있게 먹었다.
마르게리따는 기본에 충실한 맛이었다.
둘 다 토마토였지만 난 양식 소스 중 토마토 소스가 가장 좋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퍼플 언니와 점심을 먹으며 여러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신 건강에, 회사, 신과 종교 등이 그 주제였는데, 나는 그중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담론 한 것이 가장 좋았다.
나는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길.)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 모든 부조리와 성범죄, 아동 학대, 살인, 그리고 그 밖의 일들을 벌하지 못할 망정 묵인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이런 존재를 우리가 숭배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퍼플 언니가 본인도 어디선가 들은 거라며 '신의 도덕적 잣대가 인간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자기가 만약 신이라면 본인이 만든 세계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해줬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이라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워낙 철학적인 생각을 즐겨 해서 그런지 이런 대화를 나눌 때면 내적인 영감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이 느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사실 이런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어디 가서 무거운 주제에 대해 선뜻 이야기하지 않는 편인데, 퍼플 언니와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제가 여기로 흘러왔고 또 창의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런 대화 상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밥을 먹은 뒤에는 뽀빠이 화원에 가서 작은 꽃다발을 하나씩 샀다.
특이하게도 신발을 벗고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가게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구조였다.
처음에 강아지 가을이가 우릴 맞아줬는데 곧 방으로 들어가서 사진은 못 찍었다.
저 거울 앞에 있는 꽃들 중에서 우리 취향에 맞는 꽃을 골랐다.
언니는 분홍색과 보라색을 위주로 한 꽃을 골랐고, 나는 빨간색과 흰색의 꽃을 골랐다.
꽃다발에서도 서로의 취향이 확연히 묻어나서 재미있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다니다 보니 아주 예쁜 미술관도 발견했다.
입장료가 있기도 하고 미술관에 갈 계획은 없었던 터라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정원이 아름다워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지나가다가 이런 식당도 봤는데 내 취향 저격이었다.
나중에 꼭 가보고 싶다.
어떤 카페를 갈지 돌아다니며 고민하다가 헤르만의 정원이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이 곳 역시 서촌만의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공간이었는데 심플한 간판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카페 옆 서점에 걸려있던 건데 글이 좋아서 여기에도 올린다.
들어가 보니 차 전문점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몹시 마시고 싶었으나 차 전문점이니만큼 꾹 참고 평소 자주 마시는 얼그레이를 주문했다.
예쁜 컵도 진열되어 있어서 구경했다.
우리가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또 한참 수다를 떨었다. 여기서는 퍼플 언니가 덕질하는 아이돌 이야기를 많이 했다.
좋은 짤을 몇 개 공유받아서 내 폰의 연예인 폴더(a.k.a 미인 폴더)에 저장했다.
얘기하다 보니 해가 졌는데 날이 급격히 싸늘해졌다.
숏 코트를 챙겨 온 걸 하루 종일 후회했는데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하마터면 감기 걸릴 뻔했다.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어떤 카페에서 신기한 기계를 발견했다.
아마 커피콩 볶는 기계가 아닐까 싶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이유가 꽃갈피 앨범 사진을 찍었다는 대오서점도 지나가는 길에 봤다. 생각보다 훨씬 더 허름했다.
어떤 레스토랑은 벌써 핼러윈 준비를 시작했다. 내부 인테리어도 궁금했다.
집에 와서 꽃다발을 꽃병(사실 와인잔)에 꽂아두고 다시 한번 찬찬히 보는데 너무 예뻤다.
엄마 아빠도 좋아하셔서 좀 뿌듯했다.
좋은 날씨, 좋은 음식, 좋은 사람, 좋은 시간. 근래 들어 가장 행복했던 하루였다.
이런 맛에 인생 살아가는구나 다시 한번 깨달은 날이었다.
p.s.
퍼플 언니가 깜짝 취뽀 선물을 줬다...ㅠ.ㅠ 진짜 감동...
내가 갈색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브이넥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또 갈색 니트 없는 건 어떻게 알고 이런 맞춤 선물을 준 건지!
게다가 따가운 니트는 질색하는 나인데, 이 니트는 아주 보드라워서 내의를 입지 않아도 된다.
당신... 센스 만점이 아니라 오조 오억 점이야... <3
게다가 손편지까지!
내가 호주에서 받은 언니의 편지를 내 지갑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거 알고 있는지? :)
힘들 때마다 꺼내보는 편지 중 하나였는데, 이제 하나가 더 생겼다.
소중한 인연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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