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작년 6월이었어요.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만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신이 제게 준 생일선물인 것 같아요. 이 친구를 만나고 많이 행복해졌거든요.
첫인상은... 목소리가 기억에 남네요. 통통 튀는 시트러스 계열의 향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낯을 훨씬 많이 가렸기에 새로운 공간, 새로운 상황, 새로운 사람들에 압도돼 평소보다 말수가 없었는데 이 친구가 붙임성있게 재잘거리는 걸 들으며 긴장이 좀 풀렸던 기억이 나요.
한 번은 그 공간에서 크게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호다닥 달려와 괜찮냐고 물어봐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그렇게 넘어진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 놀라기도 했고, 또 민망하기도 했는데 친하지 않은 저를 챙겨줘서 그런 감정이 덜어졌어요. 그즈음부터 제 마음속에 있는 벽의 안쪽으로 들였던 것 같아요.
4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이렇게 잘 맞나봐요. 왜 4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고 하잖아요?
나이 차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언니 같기도 해요. 성격상 한 번 땅을 파기 시작하면 내핵까지 파고들어 갈 기세로 다운되는데, 두더지가 되려는 저를 단호하게 막아줘요. 하나의 생각에 매몰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러면 보통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오거든요. 근데 신기하게 이 친구의 말은 웅웅거리는 사념들 사이로 선명하게 들려와요. 그 덕에 폭주하는 생각 회로를 멈추고 진정하게 되더라고요. 저를 아는 사람 중 가장 브레이크를 잘 잡아주는 사람이랄까? 항상 고마움을 느껴요.
고민 상담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사로운 고민은 잘 이야기해도 진짜 고민은 웬만해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거든요. 근데 이 친구한테는 저도 모르게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공감을 잘해줄뿐더러 해결책도 함께 제시해줘서 도움이 많이 돼요. 그렇지 않더라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도움이 되고요.
분명 어른스러운 친구인데 당근을 못 먹는 게 웃기고 귀여워요. 같이 밥을 먹을 때 음식에 당근이 들어있으면 기가 막히게 당근을 피해서 먹더라고요. 이럴 땐 동생인 게 느껴져서 우쭈쭈 해주고 싶어져요.
밥을 맛있게 잘 먹어서 좋아요. 아직 성장기인 게 분명해요. 저는 언제부턴가 양이 많이 줄어 좋아하는 음식도 양껏 못 먹어서 아쉬운데, 이 친구랑 밥을 먹으면 그런 아쉬움이 채워져요. 약간 먹방 보는 느낌? 그래서 자꾸 뭘 사주고 싶어지나 봐요.
말을 잘 못 놓는 편이라 "언니라는 호칭 말고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돼~ 야야 거려도 돼~"라고 해도 존댓말을 고수하는 게 귀여워요. 예의 바른 고양이 같달까? 요즘은 종종 이름으로 불러주기도 하는데 그건 또 그거대로 귀엽더라고요. 그냥 이 친구가 하는 건 다 괜찮고 그래요.
가끔 다른 사람들이 이 친구한테 왜 자기한테 말 안 놓냐고 할 때면 나서서 쉴드를 치게 돼요. 아직 나한테도 안 놨다고 말이죠. 근데 한편으로는 아직 나한테도 말 편하게 안 하는데 다른 사람한테 먼저 말을 놓으면 질투 날 것 같아요. 진심으로요!
예전엔 이 친구가 말을 편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 친구의 속도를 존중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속도가 다른 거고 제 기준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거니까요. 이 친구가 절 편하게 부르는 그런 날이 온다면 오래 기다린 만큼 두 배, 아니 백 배로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아마 일기에도 잊지 않고 쓰겠죠? "OO이가 말 놓은 날!"
아주아주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데, 애기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는 모습이 기특해요. 애기가 애기들을 돌보는 게 장하고 갸륵하달까... 책임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애기들과 보통 사이가 좋은 편인 것 같은데 가끔 다쳐서 오면 속상해요. ㄱㅌㅁㄷ 너희들, 귀여운 건 알지만 내 동생 괴롭히지 말거라... 뽀뽀로 벌하는 수가 있어...
음... 혹여나 이 글이 그 친구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고민을 말하게 된다는 것, 어른스럽다는 것 등... 내 고민을 무조건 들어줬으면 좋겠고 항상 어른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적은 게 아니라 그저 평소에 그 친구에 대해 느낀 점을 적은 것일 뿐이니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고민을 들어주지 않아도, 어른스럽지 않아도 그 친구가 좋으니까요.
이 글을 쓰며 느낀 건데, 이 친구에게 더 잘해주어야겠어요. 소중한 사람에겐 사랑을 듬뿍 주는 게 제 스타일이니까요!
이쯤에서 마무리해볼까 봐요. 시간이 늦어서 자꾸 눈이 감겨요. 당장 생각나는 것 위주로 적었는데 나중에 더 생각나는 게 있다면 추가로 아래에 더 적을게요.
좋은 글감을 준 동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항상 너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내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힘들 땐 언제든 나를 찾아줘. 난 언제나 여기에 있을 테니까! 이미 자고 있겠지만 잘 자고 내일도 행복한 하루 보내길 바랄게.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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