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계속된다. 바로 어떻게 해서 내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의 부흐하임과 지하묘지 모험담을 다시 읽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중·고등학생 시절 툭하면 휴대폰을 빼앗던 아빠 때문에 책과 친해질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휴대폰이 없으면 할 일이 없어서 몹시 심심해졌기 때문이다. 무료함에 몸서리치던 나날을 보내던 중 집 근처 해공 도서관에 가 읽을만한 책이 없나 둘러보다가 서가에서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단연 시선을 잡아끄는 제목이었다. 책에 대한 책이라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뽑아 들어 대출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저녁 먹으라는 외침을 전혀 못 들었을 정도로 책에 빠져들어 순식간에 전부 읽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발터 뫼르스(혹은 발터 뫼어스)’라는 작가의 열성 팬이 되어 출간된 책을 전부 구매하고 완독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당시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속편인 ‘꿈꾸는 책들의 미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의 내용은 전작에 비해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고 흥미도 떨어졌다. 원작을 이기는 속편은 없다는 말이 딱 알맞은 경우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지하묘지를 모험하는 파트를 기대하며 읽을 텐데, 책의 절반이 지날 때까지도, 2/3가 지날 때까지도, 심지어 마지막까지도 지하묘지를 탐방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후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게 2015년 9월의 이야기다. 지금이 2022년인 걸 생각하면 작가가 7년간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창작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작가의 출간 주기가 2~4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미 책이 출간될 때는 지나지 않았나 싶다. 후편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책에 대해 후한 평가를 주기 어려울 것 같다.
500페이지 정도 되는 이 책의 줄거리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200년 전 꿈꾸는 책들의 도시인 부흐하임 대화재 이후로 부흐하임에 발도 붙이지 않던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한 통의 편지를 받고 홀린 듯 다시 부흐하임으로 향한다. 자신의 부재 속에 재건된 부흐하임의 새로운 모습에 충격과 감명을 받으며 도시를 여행하고, 옛 친구인 아이데트족 키비처와 슈렉스족 이나제아와 재회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인형중심주의를 접하게 되고 그에 관해 공부하던 중, 부흐하임 최고의 극장인 ‘인형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감독인 상어구더기족 마에스트로 코로디아크를 만난다. 그의 초대에 보이지 않는 극장이 위치한 지하묘지에 다시 한번 발을 들이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이후의 내용이 클라이맥스일 것을 생각하면 책의 서문만 500페이지를 읽은 셈이다. 내가 지금 이 책에 회의적인 평을 남길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열렬한 팬으로서 새 부흐하임의 모습을 엿본 것은 좋았으나 대화재 이후의 지하묘지를 가장 궁금해했던 터라 허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작가가 7년간 펜을 잡기는 한 건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사진을 첨부한다.
“두려움은 이성에서, 용기는 어리석음에서 나온다네.”
키비처가 미텐메츠에게 ‘절대로 지하묘지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한 이야기인데, 나는 이를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은 인간을 묶어두고, 어리석음은 인간에게 도전할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인간만 존재했다면 몹시 지루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세상을 좀 더 아름답고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어딘가 미쳐있는 사람들 덕에 인류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키비처가 미텐메츠에게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은 이해가 된다. 나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모험은 하지 말라고 만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해도 되지만, 내 사람들은 안 된다. 소중한 사람들이 상처받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한 내로남불인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한다. 크게 감명깊었던 부분이 없었기에 독후감 또한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아 걱정되지만, 다음 책은 선정을 잘해서 꼭 의미 있는 독후감을 쓰고 싶다.
끝!
(2022.06.30 THU 16:38)
'예술 Arts > 책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독후감:「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0) | 2022.09.08 |
---|---|
✏️📚 독후감:「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 홍지운」 (0) | 2022.09.08 |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에서 좋았던 구절 모음. (0) | 2022.03.14 |
「인간 실격」에서 좋았던 구절 모음. (0) | 2022.02.16 |
둘째가 좋아하는 글귀 모음 (0) | 2022.01.03 |